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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노총 건설

1) 87년 노동자 대투쟁 : 단위노조 건설에서 지역과 업종, 그룹간의 연대로!

(1) 시대상황 : 6월 항쟁

- 87년 1월 박종철 학생이 고문 학살되자, 추모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이어 4월 13일 정부가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체육관 선거’를 천명하자(노총도 지지성명), 학생, 지식인, 종교인의 단식, 삭발 투쟁이 연이어 전개되었다.
- 드디어 6월 10일, 전국의 22개 도시에서 4. 19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직선제 개헌, 군부독재 타도’를 요구하는 대중적인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범국민적인 지지와 참여가 높았고 초기 학생대오 중심에서 점차 근로민중의 광범한 참여로 투쟁 기세는 드높아 갔다.
- 그러자 정부는 직선제 인정 등의 ‘6.29 노태우 선언’을 발표하여 기만적인 민주화 조치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고, 당시 뚜렷한 투쟁 계획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민주화운동 세력은 투쟁을 지속시키지 못하면서 6월 항쟁은 주춤하게 된다.





2) 7~9월 노동자 대투쟁

(1) 불붙는 노동자 대투쟁

- 6.29 선언으로 투쟁이 주춤하고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6월 항쟁에 보여진 민중의 힘에 대한 믿음과 군부독재 세력의 후퇴라는 조건과 80년대에 다져진 역량을 발판으로 투쟁의 광장으로 진출하였다.
- 7~9월 투쟁의 최초의 진원지는 울산의 현대엔진 노동조합이었다.
  회사측의 서류 탈취와 어용노조 결성에 맞선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의 투쟁으로 확산되었고, 8월에는 현대그룹노조협의회를 결성하였다.
  8월 중순, 현대그룹 6개 사업장 4만 노동자들이 중장비로 무장한 대규모 가두시위와 행진으로 최루탄 난사로 대응하던 경찰을 무력화시켰다.
- 7월 중순 부산, 마산, 창원 등 남부지방에서 시작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 전산업으로 파급되었다.
- 정부는 놀라기만 하고 있다가 8월 말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민주국민장의 장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면서, 본격적으로 탄압에 들어갔다.
  9월 들어 언론의 이념공세와, 파업 농성장 경찰력 투입으로 농성장을 해산하고 구속시키는 등 대대적인 진압공세를 펼쳤다.

(2)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특징

- 하루 쟁의건수가 몇 해 동안의 수보다 많은 자연발생적인 투쟁의 폭발이었다. 6월 29일부터 9월 13일 까지 쟁의건수가 총 3,241건(하루 44)으로 80년 봄에 비하면 6배에 달하고, 이 중 제조업이 1,796건에 달한다.
그리고 전 산업, 전 지역에 걸쳐서 파업과 농성, 가두시위가 동시다발로 전개되었다. 6월 29일 이후, 노조가 1,162개 결성되어 그 전보다 노조 수가 40% 증가하였다.
- 투쟁의 내용과 요구는 민주노조 건설, 어용노조 민주화,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으로 집약되었다.
- 투쟁형태는 군부독재 하의 노동악법을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돌파해 나갔다.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쟁의발생신고나 냉각기간을 무시하고 현장을 점거한 후 파업농성에 돌입했으며 가두시위와 행진이 일반화되었다.
- 지역·업종을 넘어 전국으로, 중화학 대기업 남성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경공업, 중소기업, 여성노동자 사업장으로 확산되어 갔다. 특히 사무전문직 노동자의 노조결성으로 전산업에 걸쳐 노동조합이 탄생되기 시작하였다. 또 투쟁의 주체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대중투쟁으로 전개되었다.

(3) 7~9월 대투쟁의 교훈

- 7~9월 투쟁은, 6월 민중의 폭발적 진출을 노동자의 대투쟁으로 상승 발전시키면서 6월 항쟁의 소강상태를 투쟁으로 극복하고 계승해 나갔으며, 십 년을 하루에 뛰어넘은 거대한 대중운동의 비약이었다. 이는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이 형성된 이래 최대규모의 대중투쟁이었고, 노동자 투쟁의 분수령이었다. 이 투쟁을 통해 한국노동조합운동은 비약적인 조직적 진출을 하였으며, 이후 지역, 전국, 업종별 노동자 단결의 기초가 되었다.

“87년 대투쟁으로 노동자 자신이 노동운동의 주체가 되었고, 합리적인 노동조합 틀을 통하여 노동운동의 지평을 급속히 확대하였다.”


3) 87년 이후 노조운동의 흐름 및 특징

(1) 지역, 업종협의회 결성 : 87년 7~8월 대투쟁에서 89년까지

- 민주노조운동의 고양기
- 지역노조협의회, 업종노조협의회 결성기, 자주적 민주노조의 구심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이다.
- 88년 지역, 업종별 연대만으로 극복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노동자들은 ‘전국노동법개정본부’를 결성하게 됨.
  전국노동자대회개최 ‘노동법개정, ‘독점재벌해체’를 요구.
- 88년 하반기에 전국회의를 결성 => 전국조직으로의 첫 발자국
- 89년 해방 이후 최초로 세계노동절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를 투쟁을 통해 조직함.
  이 시기의 성과는 노동조합수의 양적인 증가만이 아니라 88년부터 시작되는 임금인상투쟁은 곧바로 노동조합사수를 위한 투쟁으로 단결의 유지강화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해갔다. 이는 개별의 노동자에서 지역, 업종의 틀을 넘어 계급적인 연대를 강화해 나갔으며 또한 방어적이고 즉자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투쟁의 정치적 성격 - 노동법 개정 투쟁, 공안합수부 폐지투쟁, 노태우 불신임 퇴진투쟁, 노동운동탄압분쇄투쟁 - 을 강화해 나갔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15개의 지노협과 9개의 업종협이 조직되었다. 반 한국노총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분명히 하였다.

(2) 전노협, 업종협의회의 탄생 : 90~92년 = 지역과 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의 탄생

<90년>
- 전노협, 업종회의 탄생 : 총노동과 총자본 진영의 경단협과 총노동진영의 대표인 전노협과의 투쟁이 시작됨.  
- 90년 KBS,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투쟁, 전노협 총파업
        노동자의 자생적 투쟁의 종지부
        사무직, 대기업, 전노협 연대의 단초마련
        KBS노조의 방송민주화투쟁과정에서 업종회의 건설
  이 투쟁은 90년 하반기 전국노동자대회로 수렴되었다. 전노협과 업종회의가 공동주최한 이 대회는 노동운동 탄압 분쇄와 91 임투승리를 위한 민주노조 총단결을 전면에 내걸음으로써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전문직 노동자가 민주노조 총단결이라는 한방향으로 모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91년>
- 90년 하반기 대기업노조의 민주화 - 대기업연대회의 (탄압으로 인해 중단) / 전노협과 전국 공동임금인상 투쟁본부 구성
- 91년 5~6월 투쟁(박창수열사 투쟁)은 두가지의 조직적 상과를 남겼다.
  하나는 노동진영의 ‘ILO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 공동 대책위원회’, 제 민족민주진영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전국연합 결성’

<92년>
- 420여 개의 노조가 모여 ‘총액임금제 분쇄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새로운 임금억제정책인 자본의 제도적, 정책적 탄압에 맞섰다.  
- 이 총액임금제 분쇄투쟁은 92년 11월 전국 16개 지역의 50개 단체대표자들이 모여 ‘노동법개정과 민주 대개혁을 위한 노동운동단체 공동실천위원회’를 결성  

(3) 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결성 ~ 95년 민주노총건설을 위한 준비기

- 노·경총의 사회적 합의 반대투쟁을 어용노총 해체 투쟁과 탈퇴운동으로 결합시켜 내면서 임금인상투쟁을 집중시켜 나갔다.
- 전노협,업종,그룹(대기업)의 연대 :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구성(93.6.1)
- 민주노조의 조직 발전 모색, 준비하는 시기 : 민주노총, 산별조직 건설을 위한 노력 (조직발전 경로와 발전을 위한 논의 집중)

(4) 94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민주노총 준비위를 발족

- 93년 전노대의 노·경총 사회적합의 반대투쟁, 현총련의 공동임투 그리고 「전국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투쟁위원회」소속 해고노동자들의 전투적인 원직복직투쟁 등으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김영삼 정권은 94년 말, 개혁국면을 ‘국가경쟁력 강화’ 국면으로 전환시켜 내면서 다시 한번 ‘노·경총 사회적 합의’를 추진했다.
- 94년 상반기 투쟁의 중심에 선 것은 철도노동자들의 연대파업투쟁이었다. 94년 6월 「전국기관사협의회」소속 철도노동자들과 지하철 노조의 연대투쟁은 “공기업 3% 임금억제 정책 철폐”, “근로기준법의 준수”, “해고자 원직복직” 등 공동요구에 기초한 공동파업을 전개함으로써 업종별 공동투쟁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 주었다.
- 전지협 연대파업투쟁은 부산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LNG 선상파업투쟁, 광주의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대구의 대우기전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등 각 지역별 대공장노조의 파업투쟁으로 이어져, 김영삼 정권의 임금억제정책과 노사협조정책을 실력으로 무력화시켜 나갔다.
-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은 ‘업종별 교섭’, ‘사회개혁투쟁’, ‘단일 산별노조의 건설 및 연맹의 합법화’라는 형태로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경험을 축적시켜 나갔다. 병원노련과 전문노련은 기업별 노조체계하에서 집단교섭을 성사시킴으로 업종별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전국과학기술노조, 전국의료보험노조 등은 단일 산별노조(소산별)를 건설하고, 합법성을 쟁취함으로써 산별노조 건설의 전망과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무·전문직 민주노조운동의 경우, 의료제도의 개선, 완전한 사회보장의 실시, 언론 민주화 등 사회개혁 요구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노동조합의 사회적인 역할을 부각시키고,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고양시켜 나갔다.
- 94년,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었다. 그 동안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 정책의 선도사업장으로 정부의 임금통제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이라는 이유로 노동3권마저 심각하게 제약당해 왔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94년 상반기 철도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출발로 한국통신 노동조합의 민주화,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투쟁 등을 계기로 공공부문에서의 민주노조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마침내 11월 4일에 142개 노조, 21만 조합원을 포괄하는 「공공부문노조 대표자회의」를 결성하였다.
-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성장한 수천의 대중 지도력과 대중적인 공동투쟁의 경험, 계급의식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단결을 요구하였다.
더욱이 민주노조 사수 투쟁이라는 방어적인 투쟁과 시기집중에만 머무는 소극적인 전술을 뛰어넘어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립을 실질적인 투쟁 전선으로 전화시켜 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기업별 노조의 틀로는 더이상의 계급적인 단결과 공동투쟁을 조직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한편 대중적인 어용노총 탈퇴운동은 민주노조운동이 명실상부하게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적 구심으로 서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94년 11월 13일, 「민주노총 준비위」는 이러한 배경에서 출범하였다.

(5) 95년 11월 11일 민주노총 건설

- 민주노총 출범은 87년 이후 한국 노동조합 운동사에서 한국노총에 반대하는 민주노조운동(이념적으로 자주, 민주, 연대, 변혁지향성, 조직적으로는 민주노조 총단결 노선)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이겨내고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 민주노총의 출범은 노동조합 운동의 ‘질적인 전환을 준비하는 조직적 구심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질적인 전환’이란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극복하여 전계급적 단결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는 산업별 단일노조 건설을 의미하고, 나아가 그간 반어용노총전선이라는 성격을 뛰어 넘어 대안적인 사회세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 민주노총 건설의 역사적 의의 *
- 민주노총의 출범은 무엇보다도 87년 이후 한국노동조합운동사에서 한국노총에 반대하는 ‘민주노조운동 노선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을 뚫고 승리를 쟁취했다’ 는데 큰 의미가 있다.
- 또한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운동의 ‘질적인 전환을 준비하는 조직적 구심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노동조합운동의 질적인 전환이란 자본과 정권의 노동통제수단인 기업별 노동조합체계를 극복하고 산업별 노조건설을 위한 구심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 현재 60만이 넘는 조합원을 아우르고 있는 민주노총은 이제 이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대안세력으로 등장했다. 즉 이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혁을 실질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주체로서 성장을 요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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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참고자료] 일본 노동자교육의 역사적 전개와 교육투쟁 서울본부 2005.11.20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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