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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마녀, 그리고 성녀

 

<창세기>의 주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이데올로기’다. 여성은 성별분업에 의해 가사노동을 해야 하고, 출산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성립되면서 더 심해진다. 여성은 거짓말과 유혹에 능한 죄 지은 존재이며, 심지어는, 악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이다.

오해가 있을 듯 해서 확인하자면 <창세기>의 모든 버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제관계전승(Priest-Codex) ’은 여성을 남성과 동시에 창조되었다고 적고 있다. 반면 야훼스트버전에서는 여성은 남성보다 늦게 태어나고 더구나 남성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고 종속적인 존재인 것으로 인식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나아가, 대다수 창세기기록과 해석, 이후 수정편집된 기록들은 여성은 거짓말과 유혹에 취약한 동시에 그것을 잘 구사한다. 그리고, 이후 여성은 음란화, 사탄화된다. 창세기에는 섹스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은 에덴동산에서는 섹스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는데 섹스를 죄악시하던 가치관에서 기인했으리라. 그런데 성서를 축어적(逐語的)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살린다며 만들어진‘미드라시’를 보면 뱀이 이브와 섹스를 했고 이브는 그것을 매우 즐긴 것으로 나타난다. 당연히 그것은 여성을 음란한 존재로 보던 당시 유대인사제들의 편견과 음모가 반영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기독교근본주의자들처럼- 성서를 축어적으로 해석하든 아니면 지금처럼 그 반대든,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제들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변 나라의 신화에 매우 대조된다. 실제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신화를 보면 여성은 성행위를 통해서 지혜를 얻는 입문식의 사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예로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이전에는 동물과 지내며 야생상태에 있던 엔키두는 자신에게 접근한 창녀와 성행위를 한 뒤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문명의 신전매춘여사제 풍습으로 나아간 것 같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이브는 섹스를 통해 악을 전파시키는 존재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레임은 초대교회로 확장된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자로서 남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을 수 있는 반면, 남성은 독립적으로 하나님 형상을 닮을 수 있다고 한 아우구스티누스. 나중 말은 독신사제였던 자신들에 대한 변론이었을까? 그는 인간의 원죄가 정액을 통해 유전된다고 보았고-마치 에이즈처럼-그것은 오늘날 헬조선에서 기독교를 참칭하는 사교(邪敎)교주들이 자신의 정액을 통해 여성신도의 피를 정화해 구원하는 ‘퍼포먼스’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교회가 여성을 ‘악한 존재’로만 본 것은 아니다. 그래서는 보편종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또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성의 ‘성녀화’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수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뱀의 머리를 짓밟는 사람이 ‘그 남자’가 아니라 ‘그녀’라는 점을 강조하여 사탄을 이기는 주체가 성모 마리아라고 해석한다. 그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뱀을 제압하는 성s의 이미지로 덧씌우게 된다. 이제 여성은 악녀와 성녀 사이의 그 어떤 존재가 된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이었다가, 이후 ‘구원’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여성에게 좋은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의 성적 쾌락의 도구에서 출산노예, 육아노예가 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것일 수 있고 오히려 고통이 증가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세를 지나 오늘날의 여성들은, 특히 사회가 보수화 될수록 성녀가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마치 조선시대 여성들이 ‘열녀’가 되기를 강요받으며 은장도를 지니며 결정적일 때 사용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남성의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자극했고, 남성은 여성에게서 ‘팜므 파탈’ 과 같은 욕망과 공포를 느낌과 동시에, 모성성, 나아가, ‘영적 구원’까지 느끼려고 하게 만든다. 그 결과 여성은 이래저래 피곤해진다.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로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도마조히즘적 잔혹범죄로 비화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들 중에는 이에 반기를 드는 대표적인 ‘마녀’들이 있다. 우선 마돈나다. 그는 창녀로 분해 고의적으로 십자가목걸이를 한 채 음탕한 행위를 하다가 이후에는 중세 성녀이미지로변신하여 교회를 헛갈리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 ‘마녀’가 레이디 가가지만 말이다.

카톨릭에도 ‘마녀’가 있다. 여성성의 상징인 긴 머리를 잘라 ‘대머리’가 되었지만 로마 카톨릭의 한 분파인 라틴 ‘트리덴타인 교회’의 신부로 서품받은 아일랜드 여가수 시니어드 오코너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시조 마가렛 쌔처를 비난하고, 반영국 테러단체인 북아일랜드공화군(IRA)를 지지하며, 미국에서 공연할 때 미국 국가가 울리는 것에 대해 ‘하늘에 화염을 뿜어대고 대기에 폭탄을 쏴대는 것을 영광시하는 노래가 들려진 다음에 무대에 설 수 없’며 미국 국가 연주를 금지했으며, 인기 절정의 미국 토크쇼에 출연해서는 ‘진짜 악마와 싸우자’며 교황의 사진을 갈기갈기 찢은 바 있다. 그야말로 카톨릭의 마녀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마돈나는 ‘성녀이데올로기’를 기독교가 여성에게 덧씌운 ‘성녀이데올로기’를 깸과 동시에 여성 또한 인간으로서 성적 욕망과 정체성,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이슈화시켰기 때문이다.

과거 가부장제노예제사회에서 여성은 성노예자 출산노예였다.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들은 여성의 악녀와 성녀이미지를 상품화해 돈벌이로 삼았고, 국가는 여성을 군인에서 시작해 남성노동자, 미혼남성, 실업자 등의 성적 분출구로 삼아 남성을 체제에 순화시키는데 이용했으며, 임금노동자를 재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의 책임을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시켰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부작용을 오롯이 안고 살아 간다. 봉준호는 그의 작품 <마더>에서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모성성의 광기를 고발하는데, 실제로 헬조선에서의 모성성은 가히 파국적이어서 자신이 고통스러울 경우 자식과 동반자살을 하는 비극을 낳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병리현상으로서 시민문명을 존속을 위해서는 시급히 고쳐져야 할 현상이다.

 

여성은 시민이자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거나 아니면 남성을 파멸시키는 음탕한 주체이기 이전에 에로스적 주체다. 그리고 여성은 성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다. 다시 말해 아가페적 주체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은 에로스(eros)와 아가페(agape)적 사랑의 주체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은 또 다른 사랑, 즉 시민적 사랑의 주체로 거듭 나야 한다. 그것은 우애(fraternity)다. 아시다시피 프랑스혁명의 이념은 자유, 평등, 우애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애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우애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사랑이고, 자유와 동의어이며, 억압과 구속을 벗어나는 해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이 우애, 즉 시민적 사랑의 주체로 거듭날 때 미완의 시민혁명은 완수되고, 천년왕국은 이 땅에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교히는 여성이 에로스적 주체, 우애적 주체는 물론 아가페적 주체로 우뚝 서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의 일부 목사들은 영적 혼음을 멈추라

 

과거,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박사모’에서는 가벼운 논쟁이 있었다. 박근혜가 마가렛 쌔처로 빙의하는게 낫느냐 아니면 에바 페론으로 빙의하는 게 낫느냐를 두고 말이다. 사실 쌔처는 아버지 박정희의 이미지라면 에바는 어머니 육영수의 이미지였으므로 당시 박근혜로서는 둘다 동원할 수 있는 ‘꽃놀이패’였다. 그런데 박사모는 쌔처를 선호했다. 대신 에바를 벤치 마킹하자는 한 여성을 집단린치한다. 당시 그 여자는 에바 페론을 ‘성스러운 창녀’라고 소개하며 가난한 여배우에서 영부인이 되었지만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했다며 박근혜도 에바처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박사모 남성회원들은 발끈 하며, ‘공주님 보고 창녀가 되라고?’, ‘그러는 너나 밥이나 하고 애나 키우라’며 윽박질렀다. 나는 그것을 보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불행의 씨앗이 움틀 것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박근혜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지금이라도 육영수나 에바에 빙의해서 소록도에 가 한센병환자를 보살피며 눈물 흘리는 퍼포먼스를 한다고 치자. 미디어에 대서특필 될 것이고 그것은 보수대결집은 물론 계엄선포, 심지어 군대의 친위쿠데타로 나갈 방아쇠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상황도 박근혜로서는 나쁘지 않다. ‘미용에 관심이 많지만 머리는 텅 빈 강남할매’ 정도로 이미지메이킹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다. 청와대 혹은 롯데호텔에서 인신공양 천도제를 올리는 사교도(邪敎徒) 보다는 낫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되면 그는 광화문에서 시민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뢰는 남아 있다. 최태민 때부터로 거슬러 올라가는 ‘혼음’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가 ‘상상’, ‘추측’이다. 그것은 산케이지국장과 정두언 등의 암시 등으로 수면을 아슬아슬 넘실대고 있다. 그러나, JTBC도 포함하여 언론이 그것을 정색하고 다룰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자본과 국가, 그리고 언론이 그렇게 ‘위기관리’를 못하거나 ‘딜’을 못하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박근혜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이냐를 떠나 그에 대한 비판이 여성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비화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여성후보 힐러리와 경쟁할 때 ‘여성대통령? 한국을 보라’고 했고, 또 실제로 위기에 바진 박근혜를 ‘보위’해야 할 대한민국 우파들도 스스럼 없이  ‘우리나라에서 여성대통령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실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유신공주님’께 흑기사들이 나타났다.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정광용 대변인은 1월 1일 성명에서 "7일 집회에 기독교계가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가운을 입은 1,000여 명의 목사님들이 애국 집회 행렬 선두에 선다. 그 뒤를 이어 성가대원 2,000명이 찬양을 부르며 행진한다"고 했다.

 ‘빤쓰목사’를 비롯해 성추행 목사님들도 참석하시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런데 나에게 이들의 퍼포먼스는 대한민국에 거대한 구렁이 같은 똥을 싼 박근혜여왕뱀과 영적 교미를 하려는 숫뱀들처럼 느껴져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

과거 야훼스트들이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 주변의 나라들에는 돈을 받고 자신과 섹스를 하면 오르가즘을 통해 신과 통할 수 있다고 말하던 여사제들이 있었다. 야훼스트들은 그들이 정말로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괴한 것은 ‘야훼스트의 아이들’인 헬조선의 목사들이 그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기괴한 것은 도대체 누가 화대를 주고 누가 받느냐인 것이다. 목사들이 박근혜에게 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가 목사들에게 주는 것인데 아마도 자신이 이번 사태를 잘 극복하게 되면 ‘보수기독교계’에 뭔가 큰 걸 줄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말이다. 매춘사제가 박근혜가 아니라 목사들이라는 말인데, 다시 말해 남자들이 매춘을 하며, 그것도 떼거리로 한다는 말인데, 상상만 해도 매우 음란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아마 포르노로 기독교근본주의 목사 제리 폴웰을 조롱해 고소당했지만 연방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된 <허슬러>의 발간인 래리 플린트가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려 할까? 떼로 엉덩이를 까고 있는 목사들에게 박정희 이름이 새겨진 몽둥이로 ‘물리적 힘(?)’을 가하는박근혜의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을까? 나름 진지하게 상상해 본다.

 

‘남녀섹스워커’의 권리를 위해

 

정말로 진지모드로 돌아가자.

박근혜 사태는 우리에게 빼앗은 것도 많고 준 것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유흥가에서나 회자되던 ‘남창’에 대한 논란을 ‘공론화’시킨 것이다. 국가대표펜싱선수였다가 나중에는 최순실을 ‘위안’했다던 호스트, 고영태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에 대한 기사를 보며 진시황의 어머니를 성적으로 지배해 최초의 통일된 중국제국을 농락하고 반란을 통해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던 거대한 물건의 소유자 ‘노애’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분명한 ‘섹스워커’였다. 그리고 이제는 ‘양심선언자’이다. 그는 ‘노동권’을 지닌 ‘노동자’였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양심선언을 한 ‘시민’인 것이다.

그런 그가 요새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박근혜 주변의 의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보도다.우리는 그런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들 ‘시민들’ 탓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안의 ‘또 다른 마녀’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마녀의 성별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남창이든, 아니면, 성소수자든 말이다. 그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조만간 청량리 집창촌 철거가 시작된다고 한다. 사창가를 없애는 것이야 잘 하는 것이지만 집창촌을 없애다고 매매춘이 사라질까? 오히려 새로운 변태적 형태의 매매춘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은밀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예상하는 것이다. 지금 문제는 한 푼의 보상비도 없이 쫓겨 날 ‘여성섹스워커’들이다. 그들을 사랑의 주체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건강한 시민으로서 거듭나게 할 주체는 이 땅에 없는 것일까? 교회의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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